과달키비르 강변의 집시 여인 카르멘
정태남의 클래식 여행
| 2013. 05.15(수) 12: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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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선은 이 건물에서 수업을 마치고 몰려나오는 많은 여학생들의 모습에 한참 고정된다. 1505년에 설립된 세비야 대학은 단과 대학별로 시내 곳곳에 흩어져있는데 이 건물 안에는 대학본부와 문학 및 문헌학부와 지리 및 역사학부 두 개의 단과대학이 들어서 있다. 그런데 이 건물의 원래 용도는 세비야 대학이 아니라 왕립담배공장이었다. 이 건물은 당시 단일 산업용 건축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였고, 수많은 여직공들이 이곳에서 일했다.
발걸음은 계속 강변으로 향한다. 지금의 과달키비르 강 위로는 유람선이 가끔 지나가고 있을 뿐이지만 옛날 이곳에는 수많은 상선들로 넘쳐났다. 사실 세비야는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고 나서 몇 세기 동안 스페인에서 해상무역의 중심이 되는 항구도시였다. 그러고 보니 쿠바에서 생산된 입담배도 모두 이곳으로 운송되었으니 왕립담배공장이 이 지역에 우연히 자리 잡게 된 것이 아니다.
강변길을 따라 더 걸어가다가 투우장 라 마에스트란사(La Maestranza)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길 건너편에 세워진 카르멘의 동상을 바라본다. 동상 뒤 강 너머로는 트리아나 지역이 보이는데, 이 지역은 아메리카 대륙을 왕래하던 선원들뿐만 아니라 집시들의 거주지이기도 했다.
트리아나 지역을 뒤로하고 투우장을 마주보고 있는 무표정한 카르멘의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는데 세비야 대학의 여대생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그 모습은 상상 속의 담배공장 여직공들의 모습으로 대체된다. 카르멘은 바로 그 많은 여직공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곳에서 시선을 다시 투우장 쪽으로 돌리며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장면들을 떠 올려본다.
담배공장 앞에 주둔하고 있는 기병대의 검문초소에 돈 호세라는 하사관이 있었다. 그의 고향에는 병상의 어머니와 약혼녀 미카엘라가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느 날, 담배공장에서 일하던 카르멘이 동료 여직공과 다투다가 그녀에게 상처를 입히고는 체포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를 감시하던 돈 호세를 유혹하고 도망치고 만다.
카르멘에게 마음이 빼앗겨 있던 돈 호세는 직무태만으로 영창살이를 하고 영창을 나오자마자 그녀가 있는 주점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는 자기의 상관과 충돌하는 바람에 병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카르멘이 낀 밀수업자들과 한패거리가 되어 산 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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