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박스 사회, 그리고 선비정신과 시민정신
| 2016. 11.09(수) 09:4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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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현직 검사는 “이번 사태는 대한민국 역사를 상당 부분 후퇴 시켰고 국민의 자존심을 훼손하고, 특히 가진 것 없이 순수한 젊은이들과 어렵게 삶을 극복하는 힘없는 서민들의 희망과 꿈을 짓밟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 사고가 전문가나 이해할 수 있는 알고리즘 정도로 생각하고 믿고 맡긴 ‘보이지 않는 손’이나 ‘블랙박스’ 영역에서 발생했으니 얼마나 쓸쓸할까? 대리인에 당한 배신은 아픔이 더 큰 법이다. 블랙박스 하면 우리들은 흔히 비행기나 자동차 안에 있는 데이터 모니터링 시스템같은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란 인식이 있어서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보사회가 가속화되면서 블랙박스에 갇힌 이들 알고리즘을 알지 못하면 지금의 세계를 정확히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투명한 사회, 알기 쉬운 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하지만 검은 인간이 주무르는 블랙박스 사회는 인풋과 아웃풋은 확인할 수 있어도 인풋이 어떻게 아웃풋으로 바뀌는지 알 수 없다. 이 블랙박스를 맡길 선비정신을 가진 공직자가 필요한 이유이다.
조선시대 지식인을 상징하는 선비는 오늘날의 왜소한 지식인과 곧잘 비교된다. 특히 꼿꼿한 지조와 기개, 불요불굴의 정신력, 청정한 마음가짐 등으로 특징 지워진 선비 상은 아직도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선비들은 또한 한 시대를 이끌어간 주역으로 세태에 따라 변화하는 기회주의를 용납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선비의 지조와 절개는 선비로서의 징표와 같은 것으로서 여러 가지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지만 무엇보다 주목받는 것은 학행일치의 방향성이다. 선비들은 배운 것을 실천에 옮길 때 비로소 그 배움이 의미를 갖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 실천 단계에서 가장 중요시 되던 것이 의리와 명분이다.
하지만 선비정신으로 무장한 공직자가 자신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킨다 하더라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블랙박스 사회의 내부는 훨씬 광범위하고 복잡하다. 그리고 그 민낯은 추악하고 탐욕적이기까지 한 경우도 많다. 비밀스런 알고리즘을 통해 돈과 정보를 통제하고, 검색 결과의 순위를 정하고, 빅데이터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마음을 조작한다면 생각만으로 아찔하다. 더구나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력이 평판게임에 참여하게 되면 위험성은 훨씬 더 급격히 증가할 수 있음은 최근 최씨 일가의 사태를 목도하면서 확인하고 있다.
프랭크 파스콸레는 그의 저서 「블랙박스 사회」에서 ‘블랙박스는 언뜻 경탄스러워 보이지만, 우리의 블랙박스 사회는 위험을 초래할 만큼 불안정하고 불공정하며 비생산적이다. 어떤 유능한 전문가도 건전한 경제나 안전한 사회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시민들이 담당해야할 몫이고, 시민들은 위험을 이해할 수 있을 때에만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외적으로 망신스러운 작금의 상황에서 오히려 한국사회의 희망을 감지하는 분들이 많다. 일부 대리인들의 부패에 분노하여 전국적으로 30만명이 운집한 시민들의 주말시위에서 평화롭고 성숙한 시위문화의 한 면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지 말고 도끼가 녹슬지 않으면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모니터링 하는 것이 시민정신임을 명심해야 할 듯하다.
APEC 기후센터 전문위원 김영신 fallbird@apcc21.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