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7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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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의 파란만장한 생애

스페인어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인 세르반테스.
2022. 08.30(화) 14:33확대축소
마드리드 에스파냐 광장 세르반테스 기념동상
그의 대표작인 돈키호테는 '최초의 근대 소설'이며 세르반테스에게 불멸의 명성을 얻게 해준 걸작이다. 멕시코의 대표 작가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세르반테스를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건국의 아버지"라고 평했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1547년 9월 29일에 태어났다고 알려졌으나 이 날짜는 고향 마을 성당에서 보관하던 세례 기록부에 적혀 있던 날짜에서 가톨릭 관습 상 태어나서 유아세례를 받는 기간을 역산해서 계산한 것이라, 정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마드리드 북쪽에 자리잡은 카스티야 지방의 작은 도시인 알칼라 데 에나레스에서 몰락한 이달고 집안을 뿌리로 둔 이발사 겸 외과의사인 로드리고 세르반테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종교재판소 변호사였지만 딱히 부유하지는 않았다.

세르반테스 할아버지 후안 데 세르반테스는 교육도 살라망카 대학 법대 제대로 나왔고, 여기저기 중소도시 시장직도 겸임하며 대귀족집안 변호사로도 일해보는 등 상당히 성공한 공무원의 삶을 살았던 모양인데, 막상 출세하면서 마누라하고 애들, 즉 세르반테스의 아버지인 로드리고와 삼촌 안드레스는 내팽겨쳐두고 자기는 마음대로 고향인 코르도바로 돌아가버려 세르반테스의 집안은 부자 할아버지를 두고도 가난했다. 의사도 피를 뽑거나 땀을 흘리게 해서 환자를 고치는 수준이었다. 그런 일은 이발사도 했다. 당시 스페인은 순수 기독교 집안 혈통을 중시했다.

요즘처럼 의사나 변호사처럼 수입이 좋지는 안았던 시대여서, 경제적으로 좀 더 나은 삶을 찾아 여기저기 옮겨 다니느라 가족들이 스페인 여러 곳을 떠돌았다. 빚 때문에 옥살이도 했다. 세르반테스의 유년 시절은 가난과 비참함과 부끄러움으로 얼룩졌다. 세르반테스의 학력은 불분명하다. 대학은 밟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1568년 당대 최고 지식인 후안 로페스 데 오요스가 낸 수필집에 그의 시 4편이 실린 적이 있다. 돈키호테 전편 제 9장에 나오는데,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찢어진 종이라도 주워 읽는 열렬한 독서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554년 빚 때문에 전 재산을 차압당하여 가족들은 13년 동안 스페인 전역을 떠돌아 다녔다.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에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는 것이 없지만, 마드리드로 집안이 이사한 1560년대부터 저명한 인문학자인 로페스 데 오요스 아래에서 학문을 배웠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후 1569년이 되자 교황청에 특사로 파견된 스페인 추기경의 종자로 선발되어 로마 물을 좀 먹고, 이후 스페인 왕 펠리페 2세가 동군연합으로 있던 나폴리 왕국으로 가서 그곳에 주둔해 있던 스페인 해군에 지원하게 된다. 당시 세르반테스가 왜 난데없는 군 입대를 선택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9월에는 "왕이 머무는 궁정이나 성채 등에서 싸우면서 무기를 꺼내서는 안 된다"는 법을 위반해, 오른손이 잘리고 10년 간 마드리드에서 추방당하는 벌에 처해지자 이를 피해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이탈리아 반도로 도망갔다. 로마에서 먼 친척뻘 되는 고위급 사제의 도움을 받고, 훗날 추기경이 되는 다른 사제의 수행원으로도 일하면서 르네상스 문학을 섭렵했다.

그러다 1571년 펠리페 2세의 이복동생 돈 후안 데 아우스트리아가 오스만 제국의 해군에 맞서 결성한 전투함대 휘하 부대에 자원 입대한다. 스페인과 교황청, 베네치아, 제노바가 중심이 된 신성 동맹의 연합함대와 오스만 제국 함대가 맞붙은 레판토 해전이 벌어질 즈음에 재수없게 열병에 걸렸다. 레판토 해협에서 대승했지만, 이 때 총상을 입고 왼손이 불구가 되어 ‘레판토의 외팔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그때가 24세였다. 군 생활을 계속하다가 1575년 9월에 귀국하는데 탄 배가 태풍에 휩쓸리고 튀르크 해적의 습격까지 받아 포로가 된다.

노예 신분으로 5년간 포로 생활을 하다가, 가족이 모은 돈으로 몸값을 지불하고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풀려났다. 그때가 33세였다. 그때 자유의 중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돈키호테의 주제 중 하나가 자유다. 인간이 어떻게 인간을 구속할 수 있나 묻는다. 집에 돌아왔지만 가세는 더 기울어 있었다. 1569년 첫 번째 소설 ‘라 갈라테아’를 출간했지만, 생계를 위해 포르투갈로 가서 왕실 업무를 봤다. 당시 꿈의 대륙인 중남미 파견을 청원했지만 불발에 그쳤다. 아마 집안이 개종 유대인이라서 그랬을 걸로 추측한다.

그 후 막시밀리안 2세 황제가 써준 표창장을 받고 제대하면서 조국 스페인으로 돌아오던 길에 악명 높은 알제 해적들에게 형 로드리고와 함께 포로로 잡히고 그 후 5년 동안 알제리에서 갇혀 지내게 되었다. 이 때 마드리드에 있는 트리니타리아스 수녀원에서 그를 위해 해적들에게 몸값을 지불해줬고 세르반테스는 풀려난 뒤 군사식량을 납입하는 식량조달원으로 안달루시아 지방을 떠돌아다니는 직책을 맡았으나, 그런 중에도 교회 소유 밀을 징발했다고 파문당하고, 당국 허락 없이 밀을 팔았다는 죄목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풀려난 뒤로 그라나다에서 세금 징수원을 했는데, 책임자의 먹튀와 기타 억울한 과정으로 인해 다시 세비야 감옥에 7개월 동안 갇힌다.

갇혀있던 동안에 그는 돈키호테를 구상했다. 그리고 풀려난 뒤 바야돌리드에 가정을 꾸렸고 거기에서 돈키호테 1권을 탈고하며 1605년 돈키호테 1권이 출판된다. 세르반테스는 자신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지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시대를 초월하는 고전이 되었고 문학사를 대표하는 걸작의 반열에 오른다. 이 때의 나이가 58세. 라 갈라테아 이후 무려 20년만에 내놓은 소설이다. 돈키호테는 당대 유럽 최고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어마어마한 인기로 끌었고 1614년에 다른 작가가 무단으로 돈키호테 속편을 출간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이런 광경을 본 세르반테스는 1615년 정식 돈키호테 속편을 낸다. 그 뒤 마드리드로 거주지를 옮기고 1616년 4월 22일 당뇨병과 간경변으로 한편의 영화같은 생을 마감한다. 향년 68세. 숨질 때까지 트리니티 탁발 수녀원의 일을 도왔다고 한다. 결국 사후에 그 수녀원에 묻혔다.

약 400년 만인 2014년, 스페인 정부에서 10만 유로(약 1억 4천만원)가까이를 들여 트리니티 탁발 수녀원 내의 세르반테스의 유해를 찾았다. 이 수녀원 지하에는 세르반테스와 그의 부인 등이 묻혀 있었다.



문달주 발행인 env-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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